10년 전, 20년 넘게 몸담았던 회사를 나와 작은 고깃집을 준비하던 클라이언트는 그동안 일궈왔던 모든 것들을 이 곳에 쏟아내며 절대 실패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다. 그 후로 그는 아내와 함께 가게 위층에 있는 단칸방 같은 작은 공간에서 지내며 가게를 자리 잡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사업에 모든 정성을 쏟아 부었다. 노력은 결실을 맺었고 이제 부부는 겨우내 모진 추위를 견뎌내고 이제 따뜻한 보금자리를 꿈꾸기 시작했다.

 

이 따스한 이야기의 시작에 나도 작은 조연을 맡았었는데, 그 고깃집이 내가 공간을 다루는 일을 시작하고 처음 담당자로 진행했던 프로젝트였다. 시간이 지나 나 역시도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고, 이 부부가 집에 대한 꿈을 꾸기 시작 했을 때 내가 사업을, 아니 그 때의 본인들의 길을 걷게 될 것을 알게 된 이 부부는 숙고 끝에 두 손을 잡고 그 풋내 나던 시절의 소중한 인연을 받아드리며 결국 이 이야기의 끝을 나에게 맺어 달라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를 듣고 처음 마주한 그들의 새로운 보금자리는 시간이 주는 따스한 온기를 머금고 있었고 창밖에 천천히 흐르는 강물처럼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32평의 면적은 부부가 살기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90년대에 지어진 32평 투베이 아파트의 특성상 공간의 밀도가 너무 조밀하게 구성되어 있었다. 우선적으로 공간감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것들을 소거하는 작업이 필요 했는데, 비 내력벽을 모두 철거하며 공간 3곳을 확장 하였고, 두 개로 나뉘어 있던 욕실을 하나로 합쳐 공간의 밀도를 최대한 낮췄다. 한정 된 예산이었기에 공사를 최대한 군더더기 없이 진행하며 강약조절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거실은 북카페의 느낌이 났으면 좋겠다는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바탕으로 따뜻한 우드톤을 베이스로 한 툇마루 형태의 다도 공간을 구성하여 부부의 취미생활 겸 휴식 공간으로 계획하였다. 외부 창은 로만 쉐이드를 적용하여 외부 풍경을 선택적으로 조망 할 수 있도록 하였고, 린넨 소재의 사용하여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 하였다. 안방은 공간감을 고려해 낮고 안정적인 비율의 가구를 디자인 하였고, 기존 창호 하부 턱을 없애고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하여 베란다까지 공간을 확장해 좀 더 여유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은방은 온전히 아내의 취향을 담은 방을 선물하고 싶다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에 따라 전반적인 컨셉보다 조금 더 모던하고 여성스러운 분위기로 디자인 하였다. 주방은 거실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전체 공간감을 좌우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더욱 배치를 고민 하였는데, 과감한 변경을 위해 기존에 있던 작은 슬라이딩 환기창을 없애고 수납과 기능적인 것들을 최대한 안쪽으로 배치하였다. 또한 시선을 가로막는 상부장을 없애고 아일랜드 식탁을 배치하여 거실과 더불어 한층 여유로운 느낌을 주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대신 모자란 주방의 기능은 세탁실로 쓰이던 공간을 보조주방으로 확장하여 보완하였다. 욕실은 어쩌면 전체 공간에서 가장 많이 변모한 공간인데, 안방과 거실로 나뉘어져 있던 두 개의 욕실을 하나로 합치고 스탠딩 욕조를 새로 배치하여 여유로운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몇 주 뒤 클라이언트가 인연이라는 시를 보내 주었다. 짧지만 즐거웠던 몇 달 동안의 인연에 대해 정겹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우리는 이 집의 이름을 좋은 인연이 만나 함께 했고, 앞으로 더 좋은 인연들을 만들어갈 집이라 하여, 선연재(善緣齋)라 부르기로 했다.

 

인연(因緣)의 인은 결과를 만드는 직접적인 힘이고, 연은 그를 돕는 외적이고 간접적인 힘이다.

우연은 존재하지만,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하고 결국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은 직접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숨 고르고 있던 나에게 소중한 우연으로 찾아온 아름다운 부부에게 나의 모든 직접적인 노력을 담아 완성된 인연을 만들고 싶었다.